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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미술치료 구상

로뎀나무 상담센터 19-01-16 20:21 100 0

1)융의 미술치료 구상

융의 치료 구상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성장경향, 즉 완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성장과 자기발전의 능력, 더욱 분화된 특별한 형상의 계발을 통하여 문제점들을 초월하는 능력, 즉 우리 누구에게나 잠재된 이러한 능력에 치료 구상의 초점을 맞추었다

융은 이런 과정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항상 나무를 예로 들었다. 한 그루의 나무가 폭풍우로 인하여 가지가 꺽이거나 짤려진 상처를 안고도 무성하게 자라듯이, 인간 정신도  속에 깃든 언제나 저항하려는 형상을 최상으로 구체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놀랍도록 완벽한 자태를 지닌 채 호프가이스마에 홀로 서 있는 보리수나무, 주변에는 조그마한 강이 있으며, 그 나무는 사방이 툭트인 초원의 한가운데서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을수 있고, 그근처에는 그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다른 나무나 바위도 없었다. 그러나 그와는 전혀 다른 나무, 한 예로 산비탈에 서 있는 마디 많은 소나무가 성장 의지를 더욱 설득력있게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나무는 성장을 방해하는 바위덩어리 엉겨붙어 있지만 바로 그 바위 때문에 서 있을 수 있다  줄기에 상처가 많이 난 이 나무는 여러 번 뒤틀리면서도 빛을 찾고 또 그 빛을 발견한다

한 나무가 성장 의지, 즉 가장 험난한 조건에서도 자신의 개별적이면서도 독특한 존재형태인 자신만의 형상을 실현하게 될 때, 이나무는 전혀 어려움 없이 자란 보리수 나무보다 더 감동적으로 보인다.

융은 중국의 생활지침서인 (황금 꽃의 비밀) 서문에서, 이제까지의 의식영역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정신적 문제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존내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항상 일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포기했던 문제를 어떤 사람들은 쉽게 극복하는 것을 자주보면서, 나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믿었다. 많은 경험을 통하여 볼 때, 앞서 이름을 붙였던 이러한 극복은 의식의 상승으로 인식된다. 어떤 더 높고 더 확대된 관심이 시야로 들어왔으며, 이러한 지평의 확장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는 긴박성을 잃게된다.

문제 자체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그 것은 새롭고 더 강한 삶의 방향을 만나면서 힘이약해졌다. 문제가 억제되고 무의식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빛을 통한 새롭고 더 강한 삶의 방향 때문에 문제되고 무의식화된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 때문에 문제의 색이 바래 졌으며, 문제 자체도 다른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낮은의식 수준에서 볼 때 심한 갈등과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이제 좀더 높은 인격 수준에서 보면, 높은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뇌우와 같다

융의 인간상과 그에 상응하는 치료구상은 나무의 성장과정을 나타내는 것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장 장애를 치유한다는 것은 바로 나무의 성장력을 자유롭게 하며 그것을 지지해주고 강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개성화 과정이라고 하는데,이는

좋은 조건이나 나쁜 조건에서도 항상 나타나는 고유한 개인적 형상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의 다른 형상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융에 의하면 그들은 무엇보다 내면의 심상, 즉 상징과 꿈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일상적으로 의식하고 게획하는 것과는 다른, 즉 의식세계를 넘어 우리의 더 깊은 곳에 발전 의지가 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같은 내면의 심상들은 자율적 상상에서나 밤에 꾸는 꿈과 백일몽을 통하여 형상화된 그림들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흔히 나무 자체가 모티브가 된다

2)미술치료의 효과 요인

모든 임상 경험에 의하면 미술치료의 효과는 먼저 그림을 그리는 형상화 과정 자체, 둘째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수반되는 상상과정 및 상징화 과정, 셋째로 대화 과정과 해석과정 넷째로 그림을 그리면서 또한 그림을 그린 후에 대화를 통해서 치료사와 환자 혹은 집단원과 환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만남과 관계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미술치료의 치료적 효과는 상호 영향을 미치는 네과정, 즉 형상화과정, 상징화과정, 대화과정과 관계의 과정이다


(1)제1단계 ; 형상화 과정

그림을 그리는 형상화 과정을 창의적 과정이며 무에서부터 어떤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혁신적 변화 과정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그들과 이야기 할 수 있고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제작한다. 그 자신안에 있는 창의적 어린이가 재활동하게 된 것이다

(2)제2단계 ; 상징화과정

미술치료에서 치료적 효과는 형상화 과정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상징화과정이다. 미술의 조형화 과정에는 매우 특별한 상징화 과정이 있다. 이러한 과정의 진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먼저 이완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정서, 조화 및 불쾌감, 육체적 고통이나 우리에게 이미 의식된 문제와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서 그러한 것의 이면에 숨어 있는 콤플렉스나 원형을 암시하는 정서의 표상, 요컨대 심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표상, 심상은 그림으로 형상화 되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1.색을 통하여 명백한 정서적 톤이 나타난다
2.형태를 통하여 확실한 모습과 눈에 띄는 구조가 첨가된다.
3.색칠과 구조화를 통하여 구체화되지만 또다시 변화하고 계속 발전한다

정서와 기분은 그것이 불안하든 기쁨이든, 이미 그림을 그리는 과정중에 변화한다. 정서는 그림을 통해서 어떤 관찰할 수 있는 것, 관계를 맺을 수 있거나 타협할 수 있는 상대가된다. 여기에서 그림의 이면에 있는 콤플렉스나 원형도 볼 수 있게 된다. 형상화 자체가 창의적 과정이 된다. 창의적이 된다는 것은 융에 의하면 무엇보다 이제까지 무의식에 있엇던 어떤 것을 의식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창의적 과정은 원형의 무의식적 활기이며, 그러한 활기를 발휘하고 형상화하여 완성된 작품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융의 무의식에서 나온 어떤 것을 의식으로 운반하는 상징형성 기능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정신의 초월적 기능을 표현 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그 이면에 있을 어떤 종교적 차원으로 추측되어 자주 오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융이 여기에서 의미하는것은 의식적 내용과 무의식적 내용 사이에서 통합을 끌어내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통과 기능이다

(3)제3단계 : 대화 과정과 해석과정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벌써 치료적 효과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치료사와 환자 및 집단원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는 구상에 따른 미술치료에 속한다. 그러한 대화는 꿈이나 상상과 같은 무의식에서 나온 다른 재료들에 대한 대화와 유사하며 연상과 확대와 상상을 통해 제시된 상징재료를 상징사적, 종교사적 관련영역으로 해명하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미 언급햇듯이 융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나아가 그림에 대한 지적이며 정서적 이해도 필요하다. 그것을 통하여 그림은 지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으로도 의식에 통합된다. 그림들은 종합적인 의미해석 작업에 연결되어야한다“고 강조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자기 치유력을 불러일으키며 개성화 과정으로 가는 단계가 이루어지지만, 대화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내적, 외적 현실인 생활사와 관련된과 동시에 치료적 관계로 연결시킬 수 있다. 그림은 바로 치료사와 환자사이에 존재하는 제삼자이며 근본적으로 “그들 사이에서 그려진”것으로 그들 사이를 왕래하는 보고서와 같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형상들은 조형자의 삶안에 항상 존재 하는 인물을 재 투영한 것으로서 객관적 단계에서 재인식하고 해석 할 수 있다, 이에따라 대화과정과 해석과정은 항상 다음의 요인들이 있어야한다

(4)제4단계 : 만남과정과 관계과정

꿈은 분석가와 환자 사이에 꿔진 것이라는 융의말을, 그림은 분석가와 환자사이에서 그려졌다는 의미로도 적용할 수 있다. 그림은 바로 치료적 관계를 반영해주는 것이며, 동시에 환자가 분석가에게, 환자가 치료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나아가 그림이란 쇼텐로어가 말한것처럼 환자가 분석가에게 주는 ‘선물’ 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선물이란 치료적 과정외에 또 그 전과정을 뛰어넘어 관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치료적 과정 자체를 반영하고 창의적 상상으로서 분석가에게 자신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치료사와 환자사이의 관계는 미술치료에서 항상 함께 보고 고려해 보는 제삼자인 그림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치료란 단순히 관계가 아니라, 환자의 무의식에서 나와 그림으로 조형화된 것을 관계짓는 메시지이다. 치료사는 그림을 수용하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환자에 대한 신뢰적 태도 및 긍정적인 모성원형을 이룰 수 있다


4)그림분석

그림이나 그 밖의 조형작업을 융학파에서 정신치료에 응용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인 사고에 의한 기술의 도입이 아니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식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다

프로이트를 떠나 혼자서 무의식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하였을 때 커다란 암흑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당시 무의식에 대하여 프로이드가 아는 것 이상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무의식의 비밀을 구명하고자 하는 의욕은 그 밖의 어떤 종류의 지적인 작업에 대한 것 보다도 컸으므로 그는 대학의 강단을 떠나 주로 자신의 무의식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

그는 무의식을 지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그것으로 하여금 그 스스로으 표현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1916년경에 그는 그의 후년의 학설의 중심이 된 만다라(Mandala)를 그리기시작하엿다. 1918년부터 그는 적극적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충동에 맡겨 그림을 그리면서 이 과정이 어디로 자기를 이끌어 가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것이 정신적인 발전의 목표이며 마음의 중심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석 심리학적 정신치료에서 그림을 그리게 하는 의의는 이상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첫째.그림을 통해서 무의식의 내용이 나타날 수 있고, 둘째 그림을 그림으로써 감정기능을 살리고 무의식의 창조적인 기능을 자극하여 이를 발휘할 수 있는데 있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리게 할 때의 원칙은 무엇보다도 무의식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데 있다 석고상을 보고 그리게 하거나 정물이나 풍경 등 구체적인 객체를 그리게 하는 작업위주의 치료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가능한 한 환상이나 꿈 같은 무의식의 내용을 그리고자 하거나 그것도 아닌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붓을 놀려 우연히 무엇을 형성하게 하는, 내맡기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그릴줄 몰라서 부끄럽다고 그리려 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도 일단 자기내면의 세계를 주시하고 그것을 표현하려 들면 그림을 그릴 줄 아는사람보다도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오히려 그림을 그릴줄 아는 사람은 미적인 견지에서 그림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을 그림속에 이용하므로 순수한 무의식의 표현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그림을 그릴 줄 모르던 정신병 환자들의 그림이 불후의 명작과 비길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을 낳게 되는 것은 이들이 그림 수업을 해서 기술을 연마했기 때문이기보다 이들을 사로잡은 그들 무의식의 신화적 유형의 엄청난 상징들을 이들이 끊임없이 묘사해 나간 결과라고 보아야한다.

또한 융 학파의 분석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미술요법이라고 불리는 치료방법과는 그 입장이 다르다

통상적인 미술요법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살리고 그 내용을 의식에 동화시키고 하는 등의 의식화 과정의 하나의 방편으로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미술요법이라고 따로 명칭을 붙이는 것은 붙이는사람의 자유에 속하지만 그 목적이 통상적인 미술요법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권할 때도 무의식에서 그러한 필요성이 제시되었을 때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특히 감정의 억압을 심히 하거나 감정 기능이 빈곤해진 상태에서는 무의식으로부터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그림을 그리게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도록 권해서 환자가 스스로 그리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화실에는 으례 큰 테이블이 있고 여기에는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각종 화구-연필, 크레용,크레파스, 수채화, 포스터컬러, 붓, 물통, 각종크기의 도화지 등을 넉넉히 놓아두어서 환자들이 마음대로 쓰로 싶은 것을 선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화실 담담자는 행정가가 아니고 일종의 치료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는 교육가가 아니다 이것을 그려라 저것을 그려라 한다든가 여기는 이렇게 그리는 것이 좋겠다든가 함으로써 환자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간섭하는 것은 치료자로서는 극히 졸렬한 행위이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환자가 말하면 “무엇이나 생각나는대로 그리라”고 한는 것이 좋다. 비록 환자가 환상을 그리지 않고 정물이나 옆사람의 얼굴을 그리거나 남의 그림을 보고 그린다 하더라도 성급하게 막아서는 안 된다. 모두 똑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질서 정연하게 그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일어서서 남의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생각에 잠겨 왔다갔다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치료자나 그런 위치에 준하는 화실 담담자는 정신의학에서 흔히 말하는 참여적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남에게만 그림을 그릴 것을 권할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그림을 그리고 그 작업을 좋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일 필요는 없으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일 필요는 잇다

대개 그는 환자와 함께 앉아서 자기의 그림을 그리게 되고, 서성거리던 환자가 그림을 그리려하면 그릴 수 있도록 도구 등을 챙겨 주고 그 다음에는 환자 스스로 그리게 내버려둔다. 때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눈여겨보는 태도도 무방하다. 화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환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환자를 보낸 뒤에 그림에 날짜, 이름 등을 적고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이나 그림에 대한 환자의 해설 같은 것을 적어 두거나 그 그림을 그 환자의 치료자와 함께 의논하면서 환자 자신의 자기 그림에 대한 해석을 치료자에게 알려 주는 것도 유익하다. 집에서 다니는 피분석자의 경우에는 물론 그림을 혼자 그리게 되므로 이상의 주의 점들을 실현하기 어렵지만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는 가족이 이런 방향에서 보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림도구는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가능한 것을 다 구비해야 한다.

색채를 가지고 그리는 것도 바람직하나 환자의 선택에 맡기고 처음에 무슨 화구를 고르느냐 하는 것은 환자의 감정 기능의 분화 정도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붓글씨, 동양화 같은것의 의의는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였거니와 붓글씨는 일정한 틀에 맞추어 쓰는 것이므로 감정의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분석심리학에서의 목적에 그리 적합하지 못하다. 다만 먹물로 자유롭게 화선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비록 그 색채는 단조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동양인에게는 감정표현, 또는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림도구 가운데는 손가락으로 칠하는 물감(Finger painting)도 있어 마음속에 품은 분노나 공격성을 표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화구 이외에도 흙을 갖다 놓고 빚 작업은 손과 물질을 직접 접촉하는 것으로 좋은 창조적인 자극을 준다. 이것도 조각이나 공예의 기초적인 기술 훈련을 시키는 식으로 가르치기보다 아무것이나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융학파에서는 환자에게 그림의 해석을 직접 자세히 설명해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러한 지적인 해석이 환자의 자유로운 창작과정에 부자연스러운 영향을 끼칠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기도하고,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 그리하여 무의식을 실지로 체험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 ; 형태적 공간적인 측면에서보는 관점
한장의 도화지라는 공간을 상중하 좌우로 구분하여 그림의 내용이 이 구분중 어느부위에 치중하고 있는가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혹은 하나의 상을 놓고 그 형상의 비율이 어떻게되어 있는 가에 따라 뜻을 헤아려본다. 가령 머리가 몸집에 비해서 큰가, 하체가 크고 머리가 작은가, 팔과 손이 유난히 큰가본다. 도화지의 빈 공간은 하나의 우주와 같은 것이다. 상부는 하늘이며 이성과 정신적인 자리이고 하부는 대지이며 모성적, 본능적, 신체적인 것의 자리이다. 지상의 형상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 현실에 비길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형상이 하늘에 떠 있고 대지와의 결속이 끊겨 있는가, 또는 지하에 웅크리고 있는가에 따라 그 심리적인 의미가 달라진다
도화지의 공간에서 좌우의 의미도 무시될 수 없다.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우측은 우리에게 낯익고 익숙한 측면이며, 그런의미에서 현실, 의식계를 가리킨다. 좌측은 서투르고 낯설고 생소한 측면으로 미지의 정신 세계, 무의식에 비길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림속의 형상이 어느편에 치우쳐있는가, 어느편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다만 이것을 너무 형식적으로 이용하여 풀이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둘째; 그림분석에서 보아야 할 관점은 색체이다
색체는 인간의 감정의 여러측면과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통속적인 비유로 색채의 의미를 운위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모든 인위적이고 지적이며 개인적인 것 뒤에 존재하는 객체정신의 상징적 표현을 파악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대와-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색채 상징을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림의 색채는 물론 뚜렷하게 나뉘는 경우, 예를 들면 노란머리, 청색모자, 흰색상의, 검은치마 등을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인 색조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는 그림 전체에 대한 감각을 통해서 알아야하고, 하나의 색채라 하더라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의 양면이 으례 있게 마련이므로 그림의 해석에는 고도로 분화된 감각을 요한다.

셋째; 그림의 내용에 대한 분석
이것을 위해서는 꿈의 해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상에 대한 상징을 알아야 한다
나무,동물,인물,호수,시내,바다,성,곤충,기계,일상적인 것에서 동화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그것이본래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와 서로의 관계가 빚어내는 내용의 뜻을 알아 나가야 한다. 식사,전쟁,사랑 등 무수히 많은 주제가 가능하다. 물론 이때 어떤 형상을 어느만큼 정성 들여 그리고 있는가에 유의해야한다. 그러므로 그리는 사람의 필치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선의 움직임,강도,격렬성,어떤 상 주위에 특히 선을 여러겹으로 그리는가, 그 주위에 진한 빛깔의 바탕을 그려 돋보이게 하는가에 따라 어떤 상에 내포된 그리는 사람의 감정의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동그라미를 그렸다고 모두 만다라의 상징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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